[삶과 믿음] 끼니
몇 주 전, 경상북도 구미시의 한 식당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 라면 무료”라는 내용으로 붙은 안내문이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폐지를 주워 용돈을 버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무료로 끓여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노령 인구의 삶의 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라면 한 그릇 따뜻하게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많은 네티즌이 감동의 댓글을 남겼다. 세상에는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식사하셨느냐’는 물음이 가장 대중적인 인사말이었던 적이 불과 수십 년 전이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이제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나라에서조차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서 눈물 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계적으로 보면, 빈곤의 아픔 속에 끼니를 체념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 하는 사람을 찾기보다 훨씬 쉽다. 세상이 발전하고, 점점 더 살만해진다고 해도 빈곤으로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아이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빈곤율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1100만 명이 넘는 인구의 절반은 기아로 허덕이고, 어린이 수십만 명이 영양실조의 위험에 처해 있다. 아이티에는 정부가 통계를 내지 못할 만큼 많은 고아가 있다. 하루 한 끼를 장담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고아로 산다는 것은 끼니를 채울 수 없는 삶의 바닥 중 가장 아래 어디쯤에 아이들이 놓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티에서 고아의 삶이란 굶는 일이 일상이란 뜻이다. 아이티 고아원에서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가 바로 ‘끼니’이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중략)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 앞에서 무기력하면 삶은 가장 비참해진다. 먹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할 수 없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하루 한 끼는 쌀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고 시작한 우리의 목표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끼니 앞에 때로 모래성처럼 무력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라고, 숫자는 늘어나는데 후원은 한정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 공급되는 식량을 나누다 보면 밥이 옥수수죽이 되고, 죽은 물이 되기도 한다. 하루 두 끼 식사 중에 아침에 죽 먹고, 저녁에 물 마시고 잠들어야 하는 절대 빈곤 가운데 때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끼니는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공급하는 우리 모두를 두렵게 한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라면을 무료로 대접하겠다는 경북 구미시의 식당 주인은, “배고프면 먹어야 하지 않나. 배고프면 눈물 나는 게 사람인데 밥이라도 한 끼 먹어야 살아갈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아이티 아이들은 배고파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울어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배고픔은 아이들에게는 눈물조차 메마른 두려움이다. 사람은 끼니때가 되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먹어야 한다. 아이티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밀어닥치는 끼니의 두려움을 이기는 꿈을 꾼다. 하루 두 끼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삶이 행복해지는 꿈을 계속 꾸고 있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끼니 아이티 고아원 아이티 아이들 경상북도 구미시